'언젠가는'부터 '비밀의 화원'까지…이상은의 노래는 어떻게 시간을 넘을까

2026년의 이상은과 1993년의 이상은

사진 출처, BBC/최유진

    • 기자, 김효정
    • 기자, 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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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발표됐을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청중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노래를 함께 부른다.

'언젠가는', '비밀의 화원', '삶은 여행' 등을 만든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의 노래들이다. 1988년 '담다디'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지금까지 정규 앨범 16장을 발표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창작곡 기준으로만 202곡에 이른다.

오래전 만든 노래들이 새로운 세대의 청중을 만나는 사이, 이상은은 또 다른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BBC는 지난 6월 여성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열린 '영희 페스티벌'을 계기로, 헤드라이너로 참여한 이상은을 인터뷰했다. 시대가 달라져도 계속 불리는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의 음악과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무대 뒤에서 만난 이상은

지난 8월 중순 서울의 한 합주실. 취재진을 알아본 이상은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공연을 앞두고 합주 준비로 분주하던 그는 취재진을 돌아보며 음료를 챙겼다.

"혹시 마실 거 있어요? 목마를 텐데. 음료는요?"

괜찮다는 답에도 휴대전화를 꺼내 든 그는 커피와 소금빵을 주문하고는 자리에 돌아왔다.

그러나 잠시 뒤 연주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상은은 "촬영 PD 선생님, 소리가 잘 들어가는지 봐주세요"라며 꼼꼼하게 소리를 체크했다.

단순히 녹음 유무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각각의 악기와 목소리가 어떤 균형으로 들리는지, 합주실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이 영상에도 제대로 담기는지를 확인하려는 요청이었다.

이처럼 음악의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다듬는 이상은이지만, 데뷔 당시부터 자신의 곡을 만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이상은이 공연을 앞두고 서울 홍대의 한 합주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설명, 이상은이 공연을 앞두고 서울 홍대의 한 합주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1988년 '담다디'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그는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면서도 점차 허전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음악이 좋아서 하고 있는데, 저를 어떤 상품으로 바라보는 그런 눈이 싫었어요."

이후 미국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직접 곡을 쓰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도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언젠가는'처럼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노래를 발표하는 한편, 6집 '공무도하가', 7집 '외롭고 웃긴 가게', 11집 '신비체험', 14집 '블리스(Bliss)' 등을 통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음악도 선보였다.

특히 1995년 발표한 6집 '공무도하가'는 그의 음악적 전환점을 보여주는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에서도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준흠 씨는 이상은을 "자기 세계의 언어를 끊임없이 확장해 온 아티스트"라고 평가했다.

스물세 살의 '언젠가는'

1993년 발표된 '언젠가는'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대를 넘어 불리고 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유튜브 등에 올라온 이 노래의 영상에는 '스물세 살에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을까'와 같은 반응이 이어진다. 댓글창에는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보는 사연들도 남겨졌다.

당시 이상은은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었다. 원하던 미술대학에 들어갔지만, 낯선 곳에서 여러 경험을 하며 힘든 시간도 보냈다고 했다.

그는 "시야도 좀 넓어지고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깊은 생각에 많이 빠졌던 것 같다"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왜 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것도 경험해 보고 저것도 경험해 보면서 이렇게 힘든 경험까지 했을까 싶었죠."

그렇게 스물셋의 이상은이 떠올린 것은 먼 훗날의 자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하긴 하지만, 그때는 인생을 다 겪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먼 훗날 할머니가 된 내가 지금의 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그 말을 한번 적어보자 했는데 그 가사가 나왔어요."

20대 시절 이상은이 60세의 자신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 색연필로 그려진 단정한 표정의 할머니가 그려져 있다

사진 출처, BREEZE MUSIC

사진 설명, 20대 시절 이상은이 60세의 자신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

2026년의 이상은은 삶을 돌아보며 좋은 때와 힘든 때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인생은 좋으면 반드시 내려가고, 내려가면 반드시 올라가고. 이거의 그냥 연속이거든요."

그는 나이마다 마주하는 어려움이 다를 뿐, 삶의 고민은 어느 시기에나 있다고 했다.

"나이가 많다고 힘들어요? 나이가 적다고 힘들어요? 아니요. 인생 자체는 언제나 힘들어요. 그 나이에 다른 문제들이 주어져서 그렇지. 다만 조금만 버티고 참고 하면 반드시 좋은 동아줄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생각해요."

런던의 봄이 '비밀의 화원'이 되기까지

'언젠가는'이 뉴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면, '비밀의 화원'에는 런던의 풍경이 담겨 있다.

이상은은 영국에서 약 1년간 미술을 공부했다. 어느 봄날, 학교가 있던 런던 첼시의 킹스로드 근처를 걷다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다.

"5월 봄날에 첼시 칼리지 근처 킹스로드로 놀러 나갔죠.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막 동화책 속에 들어온 것 같았어요. 기숙사 근처를 신나서 다니는데 '진짜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을 꼭 노래로 만들고 싶다' 생각했죠."

하지만 그 풍경이 곧바로 노래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상은은 한 친구를 통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알게 됐다. 그에게 무언가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다.

"그 친구가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고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싶어 떠올린 게 최근에 본 런던의 5월 봄 풍경이었죠. 꽃들과 도시 전체가 정원 같은 그 느낌을 곡으로 만들어보면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봄을 맞은 런던의 한 꽃 가게. 여러 꽃들이 양동이에 혀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봄을 맞은 런던의 한 꽃 가게

이상은에게도 그 풍경은 위로가 됐다. 당시 그는 일본을 떠나야 했던 상황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 풍경들이 제 마음을 많이 치유해 줬거든요. 너무 천국같이 아름답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비밀의 화원'은 2003년 이상은의 11집 앨범 '신비체험'에 수록됐다.

이후 아이유가 2017년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에서 다시 불렀고, 원슈타인은 2023년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의 OST로 선보였다.

무대와 유튜브에서도 새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스파의 윈터가 커버했고, 이무진은 엔하이픈 희승과 함께 불렀다. 린을 비롯한 여러 세대의 가수도 자신만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선보였다.

런던의 봄 풍경에서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어 만든 노래는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새로운 가수와 청중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비밀의 화원'이 발표 당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이상은은 '담다디'와 '언젠가는'을 제외하면 다른 노래들은 대중의 반응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비밀의 화원'이 나왔을 때도 10대들이 많이 보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나가면 반응이 썰렁했어요. 인디 쪽에서는 좋아해 주셨을지 모르지만 대중적으로 반응이 온 건 언제나 5년 후나 10년 후였죠. '삶은 여행'도 그랬고요."

그는 당시 자신의 음악이 일부 청중에게는 낯설게 받아들여졌다고 돌아봤다.

"지금 들으시면 별 위화감이 없으실지 모르지만, 그때는 '너 너무 앞서간다', '좀 이해가 안 간다' 하면서 극소수밖에 좋아해 주지 않았어요."

자신의 경험을 노래로 옮기는 이유

이상은에게는 곡을 쓸 때 지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제가 겪은 것 아니면 노래하지 말기라는 철칙이 있어요.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본 일처럼 진정성이 꼭 있어야 해요."

스물셋의 고민을 담은 '언젠가는'도, 런던에서 마주한 봄 풍경을 옮긴 '비밀의 화원'도 그렇게 탄생했다. 이상은이 직접 곡을 쓰기 시작한 데에는 데뷔 초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부르며 느꼈던 이물감도 있었다. 그에게 노래는 삶의 기록이다.

"직접 곡을 쓰니 '세상에 직접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거짓말 같지 않고 너무 편안했죠."

그는 지금의 젊은 청중에게도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앨범을 들어보라고 권한다. 30대라면 이상은의 30대 음악을 찾아보는 식이다.

"그 나이대에 고민하고 느낀 게 다 다르니까, 그런 식으로 들어보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담아낸 기록은 세월을 넘어 다른 세대의 삶과도 마주치고 있다.

10년 넘게 무대를 함께해 온 밴드 세션들도 현장에서 이를 체감한다. 드러머 이정윤 씨는 "요즘 공연장에 가면 곡이 발표됐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 관객들이 노래를 다 같이 따라 부른다"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건반 연주자 김진아 씨 역시 "오랜 시간 자신의 색깔과 소신을 유지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이 동료 음악가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안경을 낀 이상은이 나무 앞에 서 있다

사진 출처, BREEZE MUSIC

사진 설명, 이상은은 내년 발표를 목표로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몇 분 만에 노래를 만들어내는 시대에도 이상은은 오래 고민한다. 내년 발표를 목표로 10여 곡을 작업 중인 그는 "쉽게 곡을 쓰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만의 창작 방식을 전통 요리 장인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드라마 '오센'에 비유했다.

"음식 하나를 만들 때 쌀과 물의 산지까지 까다롭게 따지는 마음으로 곡을 만들어요. 진정성을 갖고 내 인생의 진짜 이야기를 담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천천히 생각해야 하는 저만의 리추얼(ritual·의식)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정성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새로운 기술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은은 여러 음악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AI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다만 가사를 대신 써주겠다는 제안에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생각을 정리해 주는 건 고맙지만 가사는 무조건 내가 써야 해요. 제가 고집하는 원재료인 '쌀'은 지켜야지, AI라는 존재가 전자레인지가 돼서는 안 되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곡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과정만큼은 건너뛰지 않는다. 어린시절, 몸에 익힌 방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때 그렇게 해놓은 곡을 그냥 계속 계속 지금도 똑같이 국수를 밀고 있어요. 똑같은 방식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