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게 최종 목표'…1분 만에 매진된 '영희 페스티벌'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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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김효정
- 기자, BBC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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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핀 조명이 무대 중앙에 선 가수를 비췄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기타를 멘 그는 객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은 선배님이 영희 페스티벌을 연다고 했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여성 음악가들이 너무 바라던 소식 아니었어요?"
그토록 기다렸던 무대였지만,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오히려 불안해졌다고 했다.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조금씩 떨렸다.
"지금까지 저의 변명은 '여자 사람 판'이 없어서 기회가 없었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실제로 판이 벌어지니 두려워졌어요. 내가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말이 끝나자 객석 곳곳에서 "아니에요"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 말을 한 김사월은 2014년 데뷔해 인디 음악계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싱어송라이터다. 2022년에는 방탄소년단(BTS) RM의 솔로 앨범 'Indigo' 수록곡 '건망증'에 참여했다. 이날 그의 곁에서 기타와 베이스, 드럼, 건반을 연주한 밴드 멤버들도 모두 여성이었다.
지난 6월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영희 페스티벌' 둘째 날의 한 장면이다.
'영희'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교과서에 등장해온 평범한 여성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이 이름을 내건 사흘간의 축제에서는 모든 무대의 메인 퍼포머와 기획·제작을 맡은 주요 제작진이 여성이었다.
K팝 여성 가수들이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에 서고, 한국의 록과 인디 음악계에서도 여성 창작자와 연주자가 늘어난 시대다. 그런데 메인 퍼포머를 모두 여성으로 꾸린 영희 페스티벌은 왜 한국 문화계에서 주목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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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만에 매진된 티켓...2030이 구매자 80% 넘어
"아무도 티켓이 팔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영희 페스티벌을 기획한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은 축제를 준비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2007년 데뷔한 오 씨는 이번 축제에서 가수보다 기획자로서 더 큰 역할을 맡았다. 그는 "국내 음악 페스티벌에서 여성 음악가, 특히 하루의 마지막 무대를 맡는 여성 헤드라이너를 자주 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축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축제를 구상할 때 참고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 잡지에서 접한 북미 음악 축제 '릴리스 페어'였다.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세라 매클라클런 등이 1997년 시작한 이 축제는 여성 솔로 가수와 여성 프런트 밴드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꾸렸다. 여성 음악가를 연이어 무대에 세우면 흥행하기 어렵다는 당시 공연계의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며 나타난 무대였다.
그는 마포문화재단, 공연기획사 유어썸머와 함께 축제를 준비했다. 별도의 기획료를 받지 않고 출연진 섭외와 프로그램 구성 등에 참여했으며, 행사가 끝날 때까지 무보수로 일했다고 밝혔다.
사흘간 마지막 무대를 채울 세 명의 헤드라이너도 빠르게 정해졌다.
1988년 데뷔한 뒤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이상은, 1997년부터 자우림의 프론트퍼슨이자 솔로 활동을 병행해온 김윤아,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도 활동하며 대중음악과 인디 음악의 경계를 오가온 선우정아였다. 모두 자신의 언어와 음악으로 노래를 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었다.
오지은에 따르면 출연을 제안받은 여성 예술가 가운데 이를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이랑·요조·나인·안신애 등 음악가를 비롯해 영화감독과 작가, 코미디언 등 여성 예술인 40여 팀도 축제에 참여했다. 오지은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두고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출연진이 공개되기 전에 판매한 얼리버드 티켓은 1분 만에 매진됐다. 전체 티켓도 판매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모두 팔렸다. NOL티켓 예매자 통계를 보면 예매자의 87.3%는 여성이었으며, 20·30대가 83.4%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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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라인업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문 이유로 꼽았다.
평소 공연과 페스티벌을 즐겨 찾는 20대 영양사 정민영 씨는 기존 페스티벌에서 여성 음악가가 헤드라이너로 서는 경우가 흔치 않아 아쉬움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그가 다녀온 행사 중에서는 2025년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베비메탈이 기억에 남는 사례라고 했다.
정 씨는 "여성 아티스트만으로도 다양한 장르와 색깔의 무대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며 "기존 페스티벌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뜻깊었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국내외 록 페스티벌을 다녀온 직장인 이혜정 씨에게는 출연자들이 이 무대를 기다려왔다고 말한 순간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제가 영희 페스티벌을 가장 기다려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티스트들이 저보다 이 페스티벌을 더 기다려왔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영희 페스티벌은 성별과 관계없이 관람할 수 있는 행사였다.
인문계 대학원에 재학 중인 20대 남성 이의경 씨는 "모두가 여성이 중심이 된 페스티벌이 열렸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곳에서 만들어진 무형의 에너지가 여성이 아닌 저에게도 따뜻하게 와닿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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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페스티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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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국 주요 음악 페스티벌의 라인업은 어땠을까.
BBC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과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전주얼티밋뮤직페스티벌의 공식 라인업을 살펴본 결과, 전체 607개 출연 자리 가운데 여성 솔로 음악가나 여성이 프런트를 맡은 팀은 114자리로 18.8%였다.
축제별로 살펴보면 전체 출연진 중 여성 프런트 비율은 세 곳이 차례대로 19.2%, 17.5%, 19.7% 수준으로 세 축제 모두 10%대에 머물렀다.
메인 헤드라이너로 범위를 좁히면 35자리 가운데 6자리로, 17.1%였다. 여성 솔로 음악가와 여성이 메인 보컬 또는 프런트를 맡은 팀을 집계했으며, 남성이 프런트를 맡은 혼성 밴드는 포함하지 않았다.
2006년 시작된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경우, 2018년 자우림이 여성 프런트 밴드로는 처음 헤드라이너에 올랐다. 2023년에는 김윤아가 솔로 음악가로 헤드라이너를 맡았다.
다만 성별 비율만으로 라인업이 구성된 배경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페스티벌 라인업은 관객 동원력과 인지도, 장르, 출연료, 공연 일정과 섭외 가능성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여러 음악 페스티벌의 기획에도 참여해온 음악 평론가 박준흠 사운드네트워크 대표는 여성 프런트 밴드의 수와 국내 페스티벌의 라인업 구성 방식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페스티벌은 무대 전환과 비용 등의 이유로 밴드 형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성 프런트 밴드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주최 측은 무대 전환 효율성 때문에 밴드 형태를 선호하고,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밴드 구성이 세션 기용보다 비용 부담이 적다"며 "그러나 국내 음악계에 여성 프런트우먼 밴드 자체가 현격히 적은 것이 구조적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관객 구성도 라인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은 주요 타깃 관객이 대개 20~30대 여성입니다. 그러다 보니 페스티벌 주최 측은 아무래도 남성 프런트맨 밴드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박희아 음악평론가도 이러한 시장의 특성에 공감하면서, 페스티벌이 지닌 음악적 다양성의 가치에 주목했다.
"인디 음악계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 있거든요. 페스티벌도 이미 알려진 음악가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과 새로운 창작자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표를 파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고려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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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BBC 뉴스비트가 2022년 영국 주요 음악 축제 50곳의 헤드라이너 약 200자리를 분석한 결과, 여성 솔로나 여성으로만 구성된 밴드의 비중은 13%였다. 혼성 그룹까지 포함하면 26%로 높아졌다.
이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프리마베라 사운드는 2019년 전체 출연진 226팀 가운데 절반 이상을 여성 음악가와 여성 프런트 팀으로 구성했다. 솔란지와 에리카 바두, 자넬 모네, 로살리아 등도 주요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페스티벌 측은 성별이 균형을 이룬 라인업을 특별한 시도가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으로 만들겠다는 의미에서 이를 '뉴 노멀'이라고 불렀다.
이후 프리마베라 사운드는 성별 균형을 맞춘 라인업을 축제의 주요 운영 방향 가운데 하나로 이어가고 있다.
사랑받아온 이름들, 그 앞에 놓였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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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인업의 비율만으로는 여성 음악가들이 경력을 쌓고 큰 무대에 오르는 과정에서 그동안 겪은 경험까지 설명하기 어렵다.
일부는 음악보다 성별에 따른 특정한 이미지로 먼저 불렸고,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한다는 사실을 의심받기도 했다고 한다.
영희 페스티벌에서 이상은의 세션 드러머로 무대에 오른 이정윤은 밴드 도트의 멤버이기도 하다. 1998년부터 드럼을 연주해온 그는 활동 초기, 음악보다 성별과 외모가 먼저 주목받는 일을 겪었다고 했다.
"저도 처음 드럼을 칠 때 편견을 많이 받았어요. '여자 드러머'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고, '미녀 드러머' 같은 범주에 넣어지는 것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이 씨는 또한, 여성 연주자가 과거보다 많아졌지만, 주변에서 10년 또는 20년 이상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는 여전히 흔치 않다고 했다.
"여자 연주자들은 많은데 10년, 20년 계속 꾸준히 활동하는 연주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결혼하고 육아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커리어와 멀어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여성 음악가가 오랫동안 활동하는 것과 별개로, 이들을 창작자로 인정하고 평가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박준흠 대표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여성이 곡을 만드는 '창작자'보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나 '보컬리스트'로 인식돼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수가 남성보다 적었던 현실과 함께, 이들의 음악적 성과가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30년 가까이 음악 활동을 이어온 여성 음악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례가 된다.
영희 페스티벌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였던 김윤아는 1997년 자우림으로 데뷔했다. 자우림의 정규 앨범 12장과 솔로 앨범 5장을 발표하며 30년 가까이 활동해왔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김윤아가 작사 또는 작곡자로 등록된 작품은 304곡에 달한다.
김윤아는 자신이 오랫동안 활동하는 모습이 다른 여성 음악가들에게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많은 여성 뮤지션 동료분들께 '저 사람도 저렇게 음악을 오래 하고 있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게 저의 꿈 중 하나였어요."
그러나 데뷔 초기에는 그가 직접 곡을 쓴다는 사실조차 의심받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오지은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김 씨는 "(예전엔) 왜 저렇게 건방지게 자기가 작곡을 했으면 그걸 숨기고 '작사·작곡 자우림'이라고 써야지 왜 자기 이름을 쓰느냐는 이야기도 들어봤다"며 "기타는 그냥 멋으로 배우고 나온 거라는 이야기는 너무 흔하게 많았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기혼 여성으로 자녀가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서 여성이고 자녀가 있는데, 음악 활동을 자녀가 있건 없건 그전과 비슷하게 똑같이 혹은 그보다 더 많이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사실 저는 그보다 더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는 자우림의 음악을 세 멤버가 공유하는 '교집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솔로 음악에서는 다른 사람이 될 필요 없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솔로 작업의 의미로 꼽았다. 김윤아는 "여성인 저 자신이 너무 좋고, 여성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솔로 음악을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가득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틀을 깨고 나온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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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보다 앞서, 여성 가수에게 요구되던 이미지와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온 뮤지션도 있다. 영희 페스티벌 둘째 날의 헤드라이너를 맡은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이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부르며 데뷔한 이상은은 단숨에 대중적인 스타가 됐다. 큰 키와 짧은 머리, 자유로운 무대 움직임은 당시 여성 가수에게 흔히 기대되던 '여성스러운' 이미지와 달랐다.
이상은은 당시 여성 가수의 옷차림과 무대 이미지에 일정한 틀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자신이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도 그 틀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돌아봤다.
"그때 당시에도 기획사라는 데가 있었고 '가수는 이래야 한다', '여자 가수는 이렇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틀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보지 않았을까요?"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상은은 당시의 활동 방식에서 공허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일본과 미국에서 미술과 음악을 공부했고, 직접 노래를 만들고 음악적 방향을 결정하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작곡을 하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애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며 "스타가 되고 싶다는 것도 없어지고, 오로지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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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이 창작자로서 발표한 작품 가운데 특히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1995년 정규 6집 '공무도하가'다. 이 앨범은 1998년과 2007년, 2018년 세 차례 진행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에서 모두 10위권에 들었다.
세 차례 조사에서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여성 음악가의 앨범으론 유일했다.
이는 이상은이 거둔 음악적 성취인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사를 대표하는 작품을 선정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여성 음악가의 앨범이 상위권에 오른 사례가 얼마나 드물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004년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은 그를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했다.
당시 선정위원회는 "한국에서 여성 뮤지션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기회만큼이나 많은 질곡이 가로막고 있다"며 "이상은은 많은 어려움을 견뎌내고 자신만의 음악을 찾았고, 진지한 음악적 노력과 열정으로 음악팬들과 함께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앨범을 내며 음악 활동을 이어온 이상은은 지금까지 정규 앨범 16장을 발표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기준으로만 등록된 그의 작품은 202곡이다.
현재 새 음반을 작업하느라 한창인 그는 음악을 계속해온 이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동안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담담히 말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도 없고 그냥 음악을 계속 만들고 해나가고…나이가 몇 살이 되든지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이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없어지는 것이 목표'인 페스티벌
이상은과 김윤아를 비롯한 음악가들이 무대에 선 영희 페스티벌은 사흘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무대를 만든 연주자들에게도 이번 축제는 이전과는 다른 경험으로 남았다.
영희 페스티벌 무대에 독주와 합주로 두 번 무대에 선 건반 연주자 김진아는 그날의 공연을 여전히 "생생하게 행복한 경험"으로 기억한다. 그는 공연장의 분위기와 관객의 반응에서 자신이 환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관객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셔서 아주 즐거웠다"며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앞에 나와 설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지은은 처음부터 이 축제가 여성 음악가들이 겪은 '어려움만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길 바라진 않는다고 했다. 이들이 이미 만들어온 음악과 무대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서러운 걸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하던 대로 얼마나 멋있고 기쁘고 영광스러운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지은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영희 페스티벌만 계속 규모를 키우는 미래가 아니다. 성별과 무관하게 음악가들이 다양한 페스티벌의 중심 무대에 자연스럽게 서고, 별도로 '여성'을 내건 행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의 궁극적 목표는 영희 페스티벌이 사라지는 것이다
"영희 페스티벌이 없어지는 세상이 진짜 좋은 세상이죠. 수많은 페스티벌에서 다들 헤드라이너를 하느라 시간을 못 빼게 되는 게 최고예요."
영상: 최유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