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왜 엄마를 공개하지 않을까…'제주에 뿌리 둔 재일교포 2세'

-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 게재 시간
- 읽는 시간: 6 분
북한 '백두혈통'은 이제 우리에게도 상당히 익숙하다.
북한 최고지도자 일가를 '백두혈통'이라 부르는 이유는 김일성 주석이 일제강점기 당시 백두산을 거점으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는 역사적 서사를 권력 세습의 정통성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항일 유격 활동을 시작해 조국을 해방시켰고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북측의 주장이다.
백두혈통은 김일성과 그의 아내이자 항일 빨치산 동지인 김정숙(1대), 그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일(2대), 김정일의 자녀 정철, 정은, 여정(3대). 그리고 김정은의 딸 주애(4대)까지 모두를 아우른다.
물론 김일성의 또다른 아들인 평일(생모 김성애: 김일성의 두 번째 아내)도 있고 김정일에게는 큰 아들인 정남(생모 성혜림: 사실상 첫 아내), 설송과 춘송(생모 김영숙: 두 번째 아내이자 유일한 법적 아내) 등 다른 자녀들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권력에서 밀려난 소위 '곁가지'로, '원가지'는 결국 정일과 그의 자녀인 정철, 정은, 여정 그리고 정은의 딸 주애라 할 수 있다.
선전선동이 일상인 북한에서 김정숙은 '혁명의 어머니', '백두산 3대 장군', '항일의 여성영웅' 등으로 추앙받는다. 사실상 북한 주민들에게 '조선의 어머니', 즉 국모인 셈이다.
이쯤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어머니 김정숙을 대대적으로 신격화한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왜 친모를 제대로 밝히지도, 칭송하지도 않는 것일까. 그 무엇보다 체제 정통성을 강조하는 북한에서 이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보이는데 대체 어머니가 누구길래, 혹시 무언가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진 출처, 정성장
고용희는 누구?
정철과 정은, 여정 삼남매의 생모는 고용희다. 그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로, 10살 때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이주해 함경북도 청진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고용희의 부친 고경택, 모친 이맹인 모두 '제주' 출신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책 '고용희-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을 펴낸 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BBC에 "고용희가 신데렐라 스토리와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10년간 관련 내용을 취재한 그는 "북한으로 간 고용희가 처음에는 일본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어렵게 지냈지만 타고난 미모와 춤 솜씨로 결국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고용희가 고향인 일본을 많이 그리워했다"며 "자녀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것은 물론 일본은 '적'이 아닌 '이웃'이라고 알려줬다"고도 설명했다.
실제 김정일의 요리사로 유명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는 자신의 책 '김정일의 요리사'(2003)에서 "김정은이 일본어 노래를 잘했으며 특히 발전한 일본 경제가 부럽다고 말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사진 출처, Yoji Gomi
고미 전 논설위원은 "1990년대 김정은이 일본 디즈니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고용희는 따로 자신의 여비서만 동행해 북해도 등 일본 전역을 여행했다"면서 "당시 일본 정부 역시 이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일교포인 고용희 입장에서는 언어도 자유롭고 교통도 편리하고 또 관광지도 많은 일본이야말로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나라였다"고 강조했다.
고용희와 그의 어린 세 자녀가 강원도 원산에 잠시 거주한 데 대해서는 "당시 원산에는 일본을 오가던 '만경봉호'라는 배가 있었다"며 "원산에 있으면 그 배를 타고 오는 사람과 만나기도 쉽고 일본 물건도 빨리 받을 수 있었기에 고용희가 원산에 살지 않았나 추측한다"고 말했다.
고미 전 논설위원은 그러면서 "당시 평양에는 김정일의 공식 아내인 '김영숙'이 있었고, 아버지가 정해준 정실 부인과 애인(고용희)이 평양에 같이 있으면 김정일도 불편할 테니 고용희와 아이들을 원산으로 이주시킨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째포'
북한에서 재일교포는 '동요계층'에 속한다. 이는 핵심계층과 적대계층의 중간 단계로,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에서 왔기 때문에 언제든 체제에 불만을 품거나 외부 사상을 퍼뜨릴 수 있는 '위험 요소' 혹은 '오염된 집단'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처음 북한에 도착했을 당시 이들은 일본에서 가져온 가전제품, 의복, 현금 등으로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할 수는 있어도 성분은 낮았기에 정치적으로 늘 감시를 받는 '이중적 처지'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들을 여전히 '귀국자' 또는 낮잡아 '째포'라 부른다.
실제 고용희보다 2년 먼저 북송선에 오른 가와사키 에이코 씨는 BBC에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째포'라 불리며 차별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가기 어려웠으며 늘 감시를 받았다는 것. 그 역시 창원 출신 아버지와 목포 출신 어머니를 둔 재일교포 2세다.
홀로 북한에 간 에이코 씨는 "속았다는 데 대한 불평을 한다거나 일본 가족들과의 연락을 빌미로 수용소에 끌려간 사례도 꽤 있었다"며 "일본 가족들이 보내주는 돈이나 물건 때문에 늘 '인질'처럼 이용됐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김일성은 아들 정일에게 애인(고용희)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지만 끝까지 외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조차 없는 이유다.

사진 출처, 정성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희는 김정일에게 꽤나 중요한 존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미 전 논설위원은 "한때 잠시나마 공개됐다 사라진 '평양의 어머니'(선군조선의 어머님)라는 기록영화를 보면 고용희가 김정일의 지방 현지 지도에 동행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고용희는 아내이자, 동지, 비서 등 김정일과 가장 가까운 '2인자'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2011년에 편집되어 김정은 집권 초기에 공개된 이 기록영화는 '고용희 공개가 체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비공개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지모토 겐지 역시 자신의 책을 통해 "김정일이 고용희의 의견을 많이 듣고 여러 정책을 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던 고용희는 자신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기를 바랐을까?
2019년 출간된 '마지막 계승자-김정은, 그는 누구인가'(저자: 안나 파이필드)에 따르면 고용희의 자매인 고용숙은 늘 '성분'에 대한 위기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특히 고용희에게 '아들을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고꾸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고미 전 논설위원은 "북한에서 차별받는 재일교포로 살아온 만큼,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서 고용희가 필히 특정 역할이나 노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 '째포의 아들'이 현 북한의 3대 세습 정권을 이어받았다. 북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백두혈통을 강조하며 체제 정당성과 내부 결속을 다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째포'인 고용희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만큼 북한 내 '성분'이라는 요소가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토대이자 핵심 지배 구조라는 것.
김일성종합대학출신의 김형수 북방연구회 대표는 "김정은은 본처의 자식이 아닌, 한마디로 숨겨놓은 고용희의 '사생아"라고 지적했다. 북한에서 백두혈통은 '신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째포의 아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쨌거나 김일성은 처음부터 '백두산에서의 항일 무장 투쟁', 김정일은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는 서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며 등장했지만, 그와 달리 김정은은 왜 평양 중심이 아닌 외곽에서 태어났는지, 왜 평양이 아닌 원산에서 자랐는지, 엄마의 출신 성분은 어떠한지 등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할아버지(4월 15일 태양절), 아버지(2월 16일 광명성절)와 달리 김정은의 생일(1월 8일)이 여전히 명절이 아닌 것 역시 같은 이유"라며 "생일을 공식 명절로 만들려면 엄마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북한 체제 특성상 최고지도자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관련 의혹들이 들불처럼 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북한 내에서도 고용희가 '째포' 출신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알고 쉬쉬하는 분위기"라면서 "이러한 내용이 공개되는 순간 북한 체제가 흔들릴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미 전 논설위원 역시 "북한에서 '째포'는 '스파이'로 여겨지기 때문에 '최고지도자(김정일)가 왜 그런 여자와 결혼했느냐'라는 비판이 두려운 것"이라면서 "특히 북한 체제는 최고지도자의 정통성에 의심을 갖는 순간 급격한 사회 불안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19년 12월 한국으로 망명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자신의 책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2025)를 통해 "게다가 김정은에게는 이모 고용숙과 이모부 리강, 외삼촌 고동훈 등 '탈북자 가족'이라는 딱지까지 붙었다"고 밝혔다. 고용숙과 리강 부부는 1998년 스위스에서 조카 김정철과 김정은의 뒷바라지를 하던 중 돌연 미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류 대사대리는 "북한 기준으로 엄밀히 따지면, 김정은 집안은 재일동포 출신이자 탈북자 집안과 연루돼 성분이 나쁘게 분류된다"며 "고용희가 김일성에게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냉정히 말해 김정은에게 북한에서 말하는 '백두혈통의 순수한 피'가 흐른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사진 출처, 정성장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엄마를 엄마라 밝히지 못하는' 출생의 비밀이 김정은의 통치 방식과 권력 과시 스타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고미 전 논설위원은 "김정은이 생모 고용희의 '성분' 때문에 겪어야 했던 정통성 콤플렉스와 억울함이 역설적으로 부인 리설주와 딸 주애를 일찍부터 공개해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당당한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게 한 강력한 동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가족에 대한 공개가 생모 고용희와 관련된 '출신의 결핍', 즉 '보상 심리'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역시 "김정일이 단 한번도 고용희를 공개석상에 데리고 나온 적이 없었다"며 "김정은이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부인 리설주를 일찌감치 공개하고 김주애도 미리 후계수업을 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는 북한 내부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편견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김정은 집권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개를 못하는 것을 보면 김정은도 그럴 만한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류현우 전 대사대리도 "김정은이 이러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듯, 집권 초기부터 김일성의 말투와 제스처를 자주 따라 했다"면서 "집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생모 고용희나 '탈북자 연루'가 있는 자신의 가계도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백투혈통의 정통성을 훼손할 수 있는 출생의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향후 어머니의 출신과 성분을 떳떳하게 공개할 수 있을까?
고미 전 논설위원은 "북한 체제가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날, 김정은이 생모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고용희의 과거를 알고 있는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시점에 맞춰 북한이 고용희를 백두혈통의 완벽한 상징으로 재포장해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는 한 고위 탈북민의 전망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최고지도자의 생모조차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 북한의 폐쇄성은 그 자체로 체제의 모순을 상징한다"며 "고용희는 북한 내에서 가장 화려한 지위에 올랐지만 가장 깊은 그늘에 가려진 '째포'로서, 북한이라는 성분 사회가 지닌 비극적 단면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정성장 부소장도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사망 직전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통해 '해방 직전까지 만주 지역에서 항일 투쟁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1940년대 소련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며 진실을 밝혔듯, 김정은도 "언젠가는 어머니를 밝힐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