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내가 안면인식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

당혹스러운 표정의 여성과 여러 사람 얼굴 윤곽들.

사진 출처, BBC/Maryam Nikan

    • 기자, 캐롤라인 스틸
    • 기자, BBC Crowd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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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나는 남자친구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 적이 있다.

사귄 지 반년 정도 됐을 무렵, 슈퍼마켓에서 남자친구를 우연히 마주쳤다. 시리얼 코너를 지나치는데 나는 이 남성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불편했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가 말을 걸고 나서야 목소리릍 통해 남자친구임을 알아차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언짢은듯했다. 하지만 내게 이는 일상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얼굴을 알아보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BBC 팟캐스트 '크라우드 사이언스(CrowdScience)'의 일환으로,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안면인식장애의 원인은?

전문가들은 안면인식장애는 약 50명 중 1명꼴로 나타날 정도로 생각보다 훨씬 더 흔하다고 말한다.

뇌졸중처럼 뇌가 손상된 뒤 이 증상을 겪는 환자들도 있지만, 영국 본머스 대학의 심리학자인 사라 베이트 교수는 "그런 원인으로 안면인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한다.

베이트 교수는 오히려 어릴 때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훨씬 더 흔하며, 이를 발달성 또는 선천성 안면인식장애라고 설명했다.

이는 가족 내에서 유전되는 경향이 있어 유전적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 유전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베이트 교수는 "단일 유전자 하나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면서 "대개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간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덧붙였다.

금발의 어린 소녀 두 명

사진 출처, Caroline Steele

사진 설명, 캐롤라인(왼쪽)과 여동생의 어린 시절 사진. 캐롤라인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베이트 교수는 어린시절의 시각적 경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얼굴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은 어린 시절 시력이 매우 나빴거나 비정상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성장기에는) 얼굴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는 결정적 시기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안경을 착용하지 못했거나…시력에 영향을 미치는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러한 요인들이 발달 과정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설명은 아주 타당하게 느껴진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약간의 시력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8살 때 안대를 썼던 것과 성인이 돼 남자친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사이 연관성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또 다른 원인을 짐작해 볼 증거도 있다.

베이트 교수는 "예를 들어, 일부 자폐 스펙트럼 환자들은 타인과의 눈맞춤을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는데…많은 자폐 환자가 안면 인식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접촉이 제한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도 이후 얼굴 인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험용 안경테를 쓴 채 시력 검사를 받는 어린 아이의 모습

사진 출처, Getty Images/BSIP/UIG

사진 설명, 베이트 교수는 어린 시절의 시력 문제와 안면장애 간 어떤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결성 부족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얼굴을 알아보는 데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경과학자들은 이것이 뇌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일련의 과정에 따른 결과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베르가모 대학의 신경과학자이자 안면 인식 연구자인 자이라 카타네오 교수는 "우리 뇌에는 얼굴 인식을 위한 특정한 회로가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은 뇌 뒤쪽의 감각 영역에서 시작된다"는 그는 "이 영역은 얼굴에 대해 매우 선별적으로 반응하도록"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

후두엽으로 알려진 이 영역에는 시각 정보를 처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1차 시각 피질이 있다.

이후 시각 정보는 측두피질이라는 뇌 영역으로 전달되고, 이곳에서 인식이 더욱 심화된다.

카타네오 교수는 "이 단계에서는 단순히 얼굴을 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얼굴이 익숙한 사람의 것인지까지도 알게 된다"며 "그 사람의 이름은 물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의미와 개인 이력 정보까지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단계에는 의식적 사고 및 의사 결정과 관련된 전전두피질이 관여하는데, "앞선 단계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지만, 이곳에서 '이건 누구의 얼굴이다'며 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현재 카타네오 교수와 같은 과학자들은 얼굴을 인식하는 이 거의 즉각적인 능력이 뇌 내 개별 영역에 단순히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영역의 협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카타네오 교수는 안면인식장애 환자들의 경우 "얼굴 인식 회로를 구성하는 (각 영역) 간 연결성이 부족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유명인들의 얼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얼굴 인지가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이는 단순히 전반적으로 기억력이 떨어져서는 아니다.

카타네오 교수는 관련 뇌 영역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한 얼굴을 식별하는 데 있어 선별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나처럼 어릴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든 그렇지 않았든, "나이가 들면 우리 모두 얼굴 인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내 안면인식장애는 분명히 나이와는 무관합니다. 나는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이 문제로 고민해왔다. 그래서 베이트 박사가 검사를 통해 공식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해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매우 기뻤다.

톰 행크스, 토니 블레어, 폴 매카트니,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사진

사진 출처, Getty Images/Reuters

사진 설명, 캐롤라인 기자는 안면인식장애 진단을 위해 배우 톰 행크스,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등 유명 인사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검사도 거쳤다

검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대하는 나의 일상적 경험에 대한 설문지로 시작됐다. 나는 '종종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등의 진술에 얼마나 동의하거나 반대하는지 점수를 매겼다.

그다음에는 안면인식장애의 일반적인 증상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인물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여주며 각 얼굴이 익숙한지 판단하는 검사를 치렀다.

영국의 유명 자연학자이자 방송인인 데이비드 애튼버러를 알아볼 수 있어 기뻤지만,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배우 톰 행크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얼굴은 구분해내지 못했다.

예상대로 나는 안면인식장애 진단 기준을 충족했다. 놀랍지는 않았지만, 공식적인 진단을 받으니 왠지 그동안의 경험을 인정받는 듯했다.

두뇌 훈련?

아마 이는 내가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할 문제일 테지만, 과학자들은 현재 뇌의 얼굴 인식 네트워크를 능동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뇌 속의 신경세포는 종종 '진동'이라고 불리는 동기화된 패턴으로 함께 활성화된다.

카타네오 교수는 "기본적으로 뇌가 효율적인 인지와…관련된 주파수에서 진동하도록 훈련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피를 통해 약한 비침습적 전류를 가해 신경세포의 동기화를 유도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초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방법은 얼굴 인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카타네오 교수는 지나친 기대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이러한 기법을 기적이라 여기고 위험한 시도를 하는 이들이 있다"는 그는 "현재 확인된 효과는 특정 과제에서 2~3%p 정도 향상되거나 (인지 속도가) 몇 밀리초 정도 빨라지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는 젊은 여성

사진 출처, Getty Images/ZeynepKaya

사진 설명, 전문가들은 환자들에게 일반적인 두뇌 훈련과 유사한 얼굴 인식 훈련 프로그램을 활용해 보았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다

베이트 박사에 따르면 일반적인 두뇌 훈련과 유사한 얼굴 인식 훈련 또한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정 행동을 수백 번 반복하는 식의 접근법을 성인 및 어린이 모두에게 시도해 보았지만, 그리 주목할 만한 결과는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사회적 상황에서 미리 계획을 세우는 등 얼굴 인식 능력에 덜 의존해 일상생활을 관리해나가는 실용적인 방안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많은 환자들이 보통 아주 명확하게 만날 장소를 정해둔다. 그래야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있고,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나 또한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여 사람을 알아보는 법을 터득했다. 유난히 시원시원한 걸음걸이, 독특한 목소리, 특정한 립스틱 색 등의 단서를 기억하는 것이다.

내게 꽤 잘 통하는 대응전략이지만, 나름의 위험도 있다. 누군가 머리를 자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